태풍 주의보가 발효되었던 밤, 경기 남부의 한 도로변 공영주차장 인근에 세워둔 SUV 차량 위로 15미터 높이의 가로수가 뿌리째 꺾이며 덮쳤습니다. 루프와 전면 유리창이 폭삭 주저앉았고 수리비만 1,000만 원이 넘어가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피해 차주가 다음 날 구청 도로과에 연락을 취했을 때 담당자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역대급 태풍에 의한 천재지변이므로 지자체에는 배상 책임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구청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태풍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 번쯤 들으셨을 겁니다. 과연 강풍이 불어 나무가 쓰러진 사고는 전부 운이 없었던 자연재해로 치부되어 개인이 모든 손해를 짊어져야 할까요. 현장을 오래 돌며 유사한 분쟁을 처리해 온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실관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강풍에 꺾인 가로수가 덮친 SUV, 구청의 첫 마디는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차주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현장 사진을 몇 장 남긴 채 차량을 견인 조치했습니다. 구청에서는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를 이유로 배상을 거절했고, 차주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자동차보험 자차 특약으로 선처리를 진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손해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자기부담금 발생은 물론이고 향후 보험료 할증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을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사고 발생 사흘째 되던 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구청에서 이미 전도된 가로수를 톱으로 토막 내어 치운 상태였지만, 길가에 방치된 밑동과 뿌리 단면을 확인한 순간 사건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던 가로수였으나 내부 속간은 이미 까맣게 썩어 내린 고사목 상태였습니다. 뿌리 역시 깊게 내리지 못하고 썩어 있어 조그만 외력에도 넘어갈 위험을 안고 있던 나무였습니다. 지자체가 평소에 수목 상태를 점검하고 솎아내거나 지지대를 세웠어야 할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흔적이 명백했습니다.
'자연재해'와 '관리 하자'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
공공이 이용하는 도로나 가로수, 가로등 같은 시설물은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배상법 제5조에서 규정한 영조물에 해당합니다. 영조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
구청 측에서는 강력한 태풍이라는 불가항력을 주장하지만, 대법원 판례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비바람이 불었다 하더라도 그 시설물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었고, 그 하자가 사고 발생이나 피해 확대에 기여했다면 지자체의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갈립니다.
즉, 나무가 쓰러진 직접적인 계기는 강풍이었을지 몰라도, 사전에 썩어 있던 고사목이거나 기울어짐이 방치된 상태였다면 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지자체의 관리 소홀에 의한 배상 대상이 됩니다. 앞서 언급한 SUV 사건에서도 이 뿌리 부패 사진과 지자체의 수목 점검 이력 부실을 근거로 정식으로 영조물배상 책임을 입증해 낼 수 있었습니다. 지자체 측은 결국 관리 하자를 인정하고 손해액의 70%를 배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대조적이었던 또 다른 현장, 왜 한쪽만 배상받지 못했을까
모든 가로수 전도 사고가 지자체 배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년 여름 비슷한 폭우 속에서 발생했던 대조적인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상가 도로변에 주차된 승용차 위로 가로수 큰 가지가 부러져 내린 사고였습니다. 차주는 앞선 사례처럼 지자체 영조물배상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조사 결과 해당 가로수는 겉과 속이 모두 매우 건실한 상태의 생목이었고, 뿌리나 줄기에 어떠한 질병이나 썩음 징후도 없었습니다. 당일 관측된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28미터에 달하는 기습적 폭풍이었습니다.
법원 및 배상심의위원회에서는 지자체가 평소 정기적으로 가지치기와 점검을 이행해 왔음을 인정했고, 어떠한 사전 위험 징후도 없던 상황에서 발생한 완전한 천재지변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당 차주는 지자체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하고 본인 자차보험으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두 사례를 가른 핵심은 바로 '사전 위험 징후의 방치 여부'였습니다. 평소 썩어 있었거나 지나치게 기울어져 민원이 들어왔던 나무를 지자체가 방치했는지가 배상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됩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반드시 찍어두어야 할 3가지 증거
가로수나 도로 시설물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교한 증거 수집입니다. 이 대목은 저도 사건을 맡을 때마다 매번 머리가 아픈데, 지자체 응급 복구팀이 도착해 나무를 톱으로 잘라 수거해 버리면 썩었는지 멀쩡했는지 입증할 길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고 현장에서 다음 3가지는 반드시 확보해 두셔야 합니다.
- 전도된 나무의 전체 전경과 주변 도로 상황: 가로수가 넘어진 방향, 주차된 위치, 주변 이정표나 건물명이 함께 나오도록 촬영합니다.
- 절단면 및 뿌리 부위의 근접 사진: 나무 기둥 속이 비어 있거나 까맣게 썩었는지, 뿌리가 넓게 뻗지 못하고 끊어져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상세히 찍어야 합니다.
- 인근 CCTV 및 블랙박스 영상: 가로수가 쓰러지던 당시의 풍속과 상황, 전도 순간을 입증할 수 있는 영상 자료를 확보합니다.
이러한 현장 증거가 명확할수록 지자체 지정 영조물배상책임보험 손해사정사가 현장에 나왔을 때 억지 주장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자차보험 선처리가 지자체 직접 청구보다 빠른 이유
지자체에 직접 영조물배상을 신청하고 자체 심의를 거쳐 배상금이 지급되기까지는 통상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반년 이상 소요됩니다. 당장 차량 수리를 마치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피가 말라가는 시간입니다.
실무에서는 본인 자동차보험의 자차(자기차량손해) 특약으로 먼저 수리를 진행하는 방식을 권장합니다. 자차보험으로 선처리하여 수리비를 먼저 지급받은 뒤, 본인 보험사에게 "지자체의 영조물 관리 하자로 발생한 사고이니 지자체로 구상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보험사는 자체 법무팀과 구상 협의회를 통해 지자체나 지자체가 가입한 영조물배상공제에 소송 또는 협의를 진행하게 됩니다. 추후 구상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처음에 부담했던 자차 자기부담금까지 환급받게 되므로 개인 비용 부담을 없앨 수 있습니다. 도로상 시설물 손해 배상에 관한 구체적인 법리와 구조는 이전에 써둔 장마철 포트홀로 휠 작살났다면? 지자체 영조물배상 5단계 청구 실무 글이나 태풍에 꺾인 가로수가 내 차 덮쳤을 때, 지자체 영조물 배상 받으려면? 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흐름입니다.
가로수, 가로등, 전신주… 관리 주체를 잘못 찾으면 시간이 두 배로 듭니다
도로변 시설물이라 해서 모두 구청이나 시청이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 주체를 잘못 찾아 접수하면 서류가 이송되는 과정에서만 한 달이 허송세월로 지나가기도 합니다.
쓰러진 시설물 종류에 따른 관리 주체는 아래와 같이 구분됩니다.
- 일반 가로수 및 인도 변 수목: 관할 시·군·구청의 공원녹지과 또는 도로과
- 가로등, 신호등, 교통표지판: 관할 지자체 도로관리과 또는 교통행정과
- 도로변 전신주 및 변압기: 한국전력공사(한전)
- 통신주 및 케이블 선: 해당 통신사(KT, SKT, LGU+ 등)
주정차된 장소가 지자체가 관리하는 도로가 아닌 사유지 내부의 조경수라면 지자체가 아닌 해당 건물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시설소유자배상책임보험 접수를 요구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주정차 금지 구역에 주차했다가 가로수가 쓰러져 차가 파손되면 배상을 아예 못 받나요?
배상 자체가 아예 거절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정차 위반이라는 과실이 참작되어 지자체의 배상 책임 비율에서 10%에서 20%가량 과실 상계(배상금 감액)가 이루어집니다. 불법 주정차가 아니었다면 피할 수 있었거나 손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Q. 차량 수리비 외에 렌트비나 휴업손해도 지자체에서 배상해 주나요?
원칙적으로 영조물배상책임에서도 차량 수리 기간 동안 발생하는 렌트비(또는 대차료)나 영업용 차량의 휴업손해는 배상 범위에 포함됩니다. 다만 자연재해가 경합된 사고의 경우 전체 손해액에서 지자체 책임 비율(예: 50–70%)만큼만 인정되므로 실제 받는 금액은 렌트비 실비보다 적어질 수 있습니다.
Q. 지자체가 태풍이 불었으니 무조건 50%만 배상하겠다고 하는데 수용해야 하나요?
자연력(태풍, 폭우)이 결합된 사고에서 지자체가 책임 제한을 주장하는 것은 실무상 표준적인 절차입니다. 대법원 판례 역시 자연재해가 손해 확대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여 지자체 책임을 30%에서 80% 사이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무의 고사 상태가 심각했음을 입증할수록 지자체의 책임 비율을 높일 수 있으므로 초기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협상하는 편이 낫습니다.
장마철이나 태풍 시기 가로수 전도 사고는 '자연재해'라는 거창한 핑계 뒤에 관리 소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작정 구청의 거절 답변에 포기하지 마시고, 쓰러진 나무의 뿌리와 기둥 상태부터 면밀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보험상품의 권유·모집이 아닙니다. 개별 사안의 판단은 약관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보험회사·금융감독원(국번 없이 1332) 또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